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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가을 산책
    風...鱗. 紋 2005. 11. 25. 20:36

     

     

    *가로사진들은 건드리믄 커집니다. 주의하시길.. *

     

     

     

    조선소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로부터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들은 아직 조선소에 근무중이어서 현장으로부터 멀리 나올 수 없는지라, 조선소에서 가까운 삼포의 대어횟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어횟집은 이전에 부산의 어느 호텔 일식당에서 주방장을 하던 냥반이 경영하면서 직접 칼잽이까지 하고 있는데, 썰지않고 포를 떠서 내놓는 회맛이 일품이라 조선소 근무할 적부터 자주 들르곤 하던 곳이다.

     

    참 오랜만의 삼포가는 길이다.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이나,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의 그 삼포가 이 삼포인지 알 수 없으나 실로 삼포스러운 진입로는 늘 정겨운 길이다. 바닷가를 따라 살짝 휘는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마치 두 손으로 소담스럽게 모아 살짝 눌러놓은 듯한 마을이 둥그런 해변을 따라 담쟁이 잎사귀들처럼 앉았다.

     

    햇살이 가득해 陽明한 바다풍경에 잠시 눈을 두고 있는데, 왝왝왝 삼키는 듯한 바리톤 음색의 소란스러움이 들려 돌아보니 갈매기들이 滿船이다.

     

    -

    손님 다 탔으니 출항하자아

    ~      

     

     

     

     

    짧은  방파제 끝에 앉은 태공의 낚싯대에 고기는 안걸리고 물비늘만 걸려 올라오나 보다. 허공에다 몇 번이고 빈 장대를 휘두른다. 잡아서 식솔들 끼니상에 올릴 작정이 아닌 듯 하니, 빈 어망이 안쓰러울 것까진 없지만 물고기넘들도 참 무정하다. 빈 손으로 삐쳐서 돌아갔다가 영영 찾아오지 않으면 지넘들도 심심할텐데..

     

    엿차, 힘껏 낚싯대를 채 올렸는데.. 아뿔싸! 바늘에 걸린 건 희게 펄럭이는 물결 한 자락이다.     

     

     

     

    점심식사라 쐬주 한 모금씩만 나눠 마셨다. 회를 씹으면서 쐬주를 혓바닥으로 찍어 먹기만 하려니 온몸에 종기가 돋는다.

     

    - 너긋뜰, 담에 또 낮에 만나자 그러믄 친구 안할껴!- 마른 샛빠닥으로 생선회를 먹으니 맛을 몰것네..

     

    결국 일어설 때 회가 절반 이상 남았다. 가여운 물고기들.. 칼에 찢어져 부끄러운 속살만 보여주고 뱃속구경도 못한 채 壽를 마쳤구나. 

     

     

     

     

     

     

    돌아오는 길에 성주사를 들렀다.

     

    금관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비 허씨가 일곱 아들을 이 산에 입산시켜 승려로 만들었다 해서 그 이름이 유래된 佛母山의 서쪽자락에 앉은 범어사의 말사인 고찰이다. 신라 흥덕왕 때 창건한 절인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선조 때 중건했다. 이 때, 곰이 나타나 건자재를 날라줬다는 설화가 있어 웅신사(곰절)라 불리기도 한다. 집에서 불과 20분 이내의 거리라 이전에 자주 찾았으나 이 곳도 몇 년만이다.

     

     

    대웅전의 측면에 곰이 가마솥에 불을 때는 익살스런 만화가 그려져 있다. 어릴 적 읽던 동화책의 삽화 수준인 이런 유치하고 조잡한 벽화가 오히려 슬쩍 웃음을 띠게 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맞배지붕 형태로 특이하다.

     

     

    삼신각의 외측벽화는 제대로 된 그림이다. 남쪽 벽에 그려져 있으니  남방 증장천왕일까.. 아니래도 할 수 없는 일, 칠이 벗겨져 남루하지만 잡귀 때려뉘기엔 문제없는 용맹호방한 기개에다 유연한 몸놀림.. 덤벼 덤벼랏, 얍 얍!!    

     

     

     

    살짝 솟아오른 치미 끝, 생각에 가득 찬 얼굴로 까치가 앉았다.

    경내를 한참 돌아 다니다 올려다 봐도 여전히 그 자리다. 극락으로 향하는 반야용선(般若龍船)에 오른 항해사와 같은 폼이구나. 하늘이 푸르니 곳곳에 청적(淸寂)한 불심이 천진(天眞)하다.

     

     

     

     

    동종 아래에 낙엽들의 작은 법회가 열렸다. 무소부재(無所不在)라... 요즘은 유비쿼터스(ubiquitous)라 일컫더라만, 부처가 없는 곳이 어디 있으랴. 동종의 울림통 아래 신심깊은 잎사귀들이 大師의 임종계송을 흉내내고 있다.

     

        

    흙 물 불 바람을 빌어 부지했던 이 몸     

    이제 돌려주려 하네     

    어찌 부질없이 오가며     

    허깨비같은 이 몸을 수고롭게 하리    

    내 이제 죽음으로써 큰뜻을 좇으리라.

     

                  四大假合 今將返還
                  何用屑屑往來 勞此幻軀
                  吾將入滅 以順大化
           

     

     

     

    절정이 지났건만 때늦은 애기단풍이 홀로 붉다. 

    이리 홀로 낯붉히고 있는 넘을 보면 주변이 둘러보아진다.

    대낮에 뭘 봤을까.. 대체 뭘 봤길래 이리 낯이 붉어졌을까.. 험험.. 

     

     

     

     

    산사 오르는 흙길,

    물 흘러내려 패인 골에 낙엽이 흐른다.      

    낙엽이 스스로 떨어지고 길을 찾아 누우니

    이를 마땅히 素心의 道라 하겠다. 

     

     

    木耳에게 몸을 빌어준 늙은 나무는 默言중,

    쇠하여 기대 누운 나무조차 그러 하거늘,

    땟물에 절은 내 몸뚱이 또한 누군가의 세상이자 宇宙이나니...  

     

     

     

     

    절을 다 내려 온 곳, 갑자기 숲이 환하다.

    만추에 열린 <色의 오케스트라>가 터뜨려지듯이 연주된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팔을 휘저으며 지휘하는 대로 붉고 노랗고 더러 푸른 색이

    일렁대는 파도같이 色音을 내지르고 있다.

     

    (근데, 솔직히 수종이 느티나무라는 확신은 없다. 난 아직도 느티나무의 정확한 형태를 잘 모른다. 그냥 잘생기고 듬직한 나무인지라 그리 생각할 뿐이다. 아님 어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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