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우려 먹기 / 넌 누구냐? 매력적으로 뻔뻔한...
    塵...재탕 삼탕, 심지어 오탕 2010. 4. 23. 18:31

     

    이번에 우려 내는 글은 비교적 최근에 씌어진 글이다.

    2007년 2월에 큰넘의 수료식에 참석을 위해 그넘이 다니던 학교에 들렀다 우연히 읽게 된 책에 대한 소개를 할까 싶어 시작했다가 써 내려가던 중 책에 대한 글인지 그 책을 쓴 사람에 대한 글인지  모호해지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말미는 정체불명의 글이 되어버렸고, 결국 제목마저 넌 누구냐?... 라는 식으로 흘러버렸다. 잘 나가다 양재동으로 빠져버린 격이다.

     

    요즘 들어 예전같이 눈알 부라려 가며 영화를 즐기지 않는 편인지라 이 냥반의 근황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지만, 한 때 꽤 이뻐하던 사람이었다. 모름지기 이 냥반만큼 뚜렷한 철학이나 작가로서의 고집, 촌철살인적 유머, 스타일리쉬한 감각, 다양한 영화적 재능 등을 가진 감독이 쌔고 쌘 한국 영화계이지만, 그래도 이 냥반이 남들에 비해 내 눈에 들었던 이유 중의 하나라면 이 냥반... 그 기본 재능에 더해서 정말 많이 안다는 것, 그리고 그 아는 것을 잘도 주절거린다는 점이다. 아는 것 많고 그거 다 써먹을 줄 안다는 거, 이거 진짜 대단한 스펙 아닌가. 재능만 갖추었거나 줏어 들어 아는 것만 많거나 둘 중 다 못 갖추었거나 뭐 그런 식의 군상이 일반적인데 이 냥반은 둘 다 갖추었고 게다가 써먹을 줄을 아는 사람이라는 야그다.

     

    ***글고, 우려먹기를 하자고 지나 간 글들을 하나하나 정독을 하다 보니 오자나 탈자는 당연하고 조악한 문장에 머리가죽까지 뜨끈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글쟁이 아닌 공 돌돌이니 전혀 죄될 거 음따... 밥도 떡도 안 나오는 블로그인데 이만하믄 됐지 뭘 그래... 이딴 식으로 소심한 자기 위로를 하고 있다. 그러니 가급적 헐렁헐렁 읽어 넘어가시길 권하고 싶고... 우쨋거나 저쨋거나 분명한 건 내 글을 이리 정색을 하고 열심히 읽어본 적이 없는데, 요새 뜬금없이 그 짓을 하려니 머릿 가죽 수육증에다 안구건조증과 오십견까지 창궐하는 바 정말 가뜩이나 바쁜데 이 생고생을 왜 하나.. 뒤통수를 쥐어뜯고 있다. 물론 이런 설레발은 조만간 다시 불시에 잠수할 것을 미리 예고하는 광고성 멘트일 거라는 거, 다 눈치채셨을 게고... 

     

     

     

     

                        *********************************************************************************************************************

     

     

     

     

     

     (음악은 자동듣기로 고쳐졌습니다)

     

     

     

     

     

    1963년 서울생, 서강대 철학과 졸업. 재학중 사진동아리 사광회와 영화동아리 서강영화공동체의 멤버였고, 영화 <깜동(1988)>과 <비오는 날의 수채화(1990)>의 조감독을 거쳐, 1992년 <달은...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 데뷔, 이어 <삼인조(1997)> 단편 <심판(1999)>을 발표.... 힛트치지 못하는 영화를 만들어 가면서 생계를 위해 영화에 관한 여러 가지 글도 쓰고 각종 방송매체에 출연하는 등 비평가 노릇을 하다가.... 우찌우찌 해갖꼬 감독으로 이름을 얻더니... 청룡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춘사영화상, 대한민국영화상, 영평상, 부산영평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수상, 2004년 칸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 대상도 수상했고. 시체스영화제 작품상, 판타스포르토 영화제 작품상, 베니스영화제 젊은 사자상, 영국 독립영화상을 비롯, 코냑, 스톡홀름, 토리노, 테살로니키 등지에서도 수상한 후, 베를린, 뉴욕, 토론토, 런던, 선댄스, 에딘버러, 우디네 영화제에 초대되었으며 동경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하기도 했으며, 현재 한국영화감독조합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굴까?

     

     

     

     

     

     

     

     

     

     

    이 남자박찬욱이란 사내이다. 1992년 <달은...해가 꾸는 꿈>으로 소위 입뽕을 했으나 이렇다 하게 대중적 시선을 모을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한 채 죽자살자 식솔들을 위한 보급투쟁을 위한 허드렛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충무로를 흔들더니 급기야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로 이루어진 이른바 "복수 3부작"을 완성함으로 소위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 냥반이다.  

     

     

                               ********************************************

     

     

     

     

    지난 2월의 어느 날낙지의 수료식이 있었다. (낙지가 공부했던 곳은 정규학교가 아닌 대안학교로, 졸업장이나 학력인증서가 수여되지 않는 탓에 졸업이 아닌 수료란 용어를 쓰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공교롭게도 그 날이 마눌님의 학교 개학일과 겹쳐 몸을 빼기가 거북하다시며 내 눈을 오랫동안 빤히 들여다 보시기에... 부득불 『준비된 땡땡이』인 공돌돌이 중차대한 학부모 역할을 맡기로 하고 사무실을 토껴 열차에 몸을 얹고서는 "급거" 상경했다. 오후 3시부터 밤 9시 이 후까지 진행된 수료식은 나름대로 유쾌하고 감동적이었다. 5명의 수료생들이 그간 열심히 준비한 각자의 포트폴리오를 발표한 후 전교생과 어울려 마지막 축제를 여한 없이 즐기는, 여늬 일반학교와 구분되는 독특한 문화적 프로그램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낙지는 자신이 만든 인간과 자연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을 발표했었는데....   가만, 근데 야그의 주제는 낙지의 수료식이 아니다.

     

     

     

     

     

     

     

     

     

     

     박찬욱의 몽타주 

     

     

    행사의 참석을 위해 도착했을 때 낙지는 한창 리허설중이었고, 행사 시작은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었다. 그냥 기다리기가 지루해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그곳 도서실에 들어갔고 가방을 의자에 던져놓은 뒤 서가로 다가가 별생각 없이 눈높이쯤에 꽂혀있는 넘 한 권을 무턱대고 잡아당겨 펼쳤다.

     

     

    ....... (앞으로 계속 '내 딸'이라고 적는 건 좀 아동비하적이고 실명을 부르는 건 프라이버시 침해의 우려가 있으므로 그냥 가명 '종팔이'로 표기하기로 한다.) ....... 작년, 그러니깐 1학년 때, 종팔이는 가훈을 적어내라는 숙제를 받아왔다. "뭐냐?"길래 "없다!"라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어느 집구석에나 그것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라고 하셨다며 세 시간 동안 울 준비를 시작했다. 하나 짓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다....... 몇 시간 후, 마침내 나는 이런 문장을 백지에 적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아니면 말고'. 나는 말했다. "뭐든지 멋대로 한번 저질러 보는 거야. 그랬는데 분위기가 썰렁해지면 그때 이 말을 쿨하게 중얼거려주는 거지." 종팔이는 정말 좋아했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로 첫 장을 열고 있길래 썰렁한 유머집인가 해서 표지를 다시 보니, 아니다!  박찬욱의 몽타주

     

     

     

    (몽타주... montage. 용의자를 찾기 위한 합성사진. 또는 영화의 컷과 컷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영화 장르의 핵심적 특성을 드러내는 용어... 라고 적혀있다.) 

     

     

     

     

     

     

        

     

      

        

     

    수료식 내내 이 책을 들고 앉아 왼쪽 눈은 정면 무대에 던져놓고, 오른쪽 눈은 무릎 위 책장을 슬슬 훑었다. 어쩌다 손에 쥐게 된 비디오 테이프로 보다 충격적인 감동에 빠져 홀딱 반해버린 영화 죽어도 좋아! 에 대해 '제한상영가' 판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 영화 등급 심사위원을 향해 쏱아부은 글을 읽을 때는 허벅지를 긁으며 유쾌한 코웃음을 참아야 했다.

     

    ..... 구강성교와 성기노출이 문제였다지요? 구강 아니라 비강으로 한들 뭐가 대숩니까, 아래로 들어가면 정상이고 위로 들어가면 변태입니까? 국가가 체위도 정해주나요? 남성기가 크게 잡혀서 안된다고요? 중요한 건 어느 신체기관이 찍혀 있느냐가 아니잖습니까, 영화가 무슨 축군가요? '핸들링'처럼 '페니슬링' 하면 반칙인가 보죠? 그럼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은 미술사의 숱한 걸작들은 다 뭡니까? 그리고, 성교를 가짜로 했든 진짜로 했든 그런 게 왜 문제죠? 가짜로 하는 영화들일수록 진짜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않나요? 예를 들어 너무 실감 나게 연기해서 꼭 진짜 같아 보이는 어떤 에로틱한 영화가 있다고 칩시다. 그럴 때 여러분은 배우들을 불러 실제 삽입 여부를 조사한 다음, "삽입이면 제한이요, 불입이면 십팔이라..." 이러실 건가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좋아서 진짜로 성교하는 장면과, 아무 애정도 없는 배우들이 억지로 성교하는 척만 하는 장면 중에 어느 쪽이 보기에 아름다운가요? 그 장면에서 심사위원 여러분은 정말 성적 수치심을 느끼셨나요? 아니면 '나는 아니지만 우리 국민은 그럴거야'라고 생각하셨나요. 전자면 과민이요, 후자면 오만이라..... 제 생각에는 여러분이 뭔가를 심판하려는 자세로 영화를 봐서 그런 착각이 생겼지 않았나 싶군요. 그냥 편한 마음이었다면 여러분도 아마 저희 부부처럼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우는 희한한 경험을 하셨을 텐데, 참 안됐네요.

    그렇다면 심의 자체를 아예 하지 말란 말이냐, 이렇게 물으신다면 저는 또 이렇게 대답하렵니다. 예!

    .......       

     

     

     

    참고로 죽어도 좋아!는 '노인의 성'을 다룬 인디영화로, 영화에 출연하는 노인들의 리얼 섹스로 세간의 군침을 족히 삼키게 만들었던 초절정 울트라 로맨틱 무비이다. 아직 못보신 분은 지금 바로 비디오샵에 가서 빌려 보시라. 나 역시 깊은 감명과 즐거움을 구가하며 세 번이나 거듭 봤던 애호가인지라, 이 냥반의 저 앵앵거림에 적극 찬동하는 바이다.  앵앵~~~ 

       

     

     

     

     

     

     

     

     

     

    책은 1부 신변 잡기, 2부 감독했던 영화 제작일지와 인터뷰, 마지막으로 3부 그가 사랑하는 B무비에 대한 칼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2부는 거의 만담에 가까운 유희로 독자의 두 손을 잡고 쎄쎄쎄를 부르는 등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친근을 맛 보여 주다 3부가 되면 냉정하게 독자의 등에다 칼을 꽂는다. 독자가 영화에 대해 알든 모르든, 영화에 대해 관심이 있건 없건 안중에 없이 딱딱하고 불편한 썰을 풀어 대는데, 이 냥반, 글에서 느껴지는 성향 또한 매우 직설적인 표현주의자이다. (생긴 것은 뻔뻔스럽고 능글맞게 생겼다.) "감독이 자기 영화를 통해 어떤 주장을 하고 싶을 때 그것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냥 그 말을 해버리라는 것이다." 영화 사상 최고의 잠언가라 추켜 세우면서 본문 한 귀퉁이에 인용한 장-뤽 고다르의 이 말에서 이 냥반의 성격이 목격되드키, 스스로 B무비의 전도사를 자처할 만큼 B무비의 적극적 예찬론자이면서 탁월한 이론가이기도 한 이 냥반이 정리해 내는 B무비의 역사와 미학 이론을 읽고 있노라면  그렇잖아도 시트콤의 대사만큼 경쾌하고 현란한 달변만으로도 가뜩이나 주눅의 무게를 감당하기도 벅찬데, 이 싸구려 등급 영화-온갖 장르영화, 필름 누아르, 갱스터 무비, 싸이 파이(sci- fi)-에 대한 놀랄만큼 풍부한 자료, 정연하고 해박한 분석, 그물코를 꿰듯 여기저기 이어 붙이는 해설 등을 팥죽 끓이듯 북작거리며 뒤섞어 가면서 쏟아 내는 것이 어느 부분 하나 망설임도 없고 거침이 없다. 나처럼 영화에 대해 충분히 무시칸 공돌돌은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 냥반이 휘두르는 어휘와 용어의 (달콤함으로 격상시켜 마땅한)폭력으로, 팥죽 속에 던져진 새알과 밥알처럼 공굴렀다 눌어붙다 했다.

     

     

    .....그러나 에버트의 지적대로 이 영화가, 짐 자무시라는 젊은 대가의 과시욕, 자기탐닉, 겉치레에 불과한 천박한 신비주의 등으로 매도될 소지를 지닌 것도 사실이다. 어떤 대목에서는 아슬아슬할 지경이다. 예컨대 조니 뎁이 새끼 사슴의 시체를 안고 나란히 눕는 장면(그 가여운 짐승이 애처롭게 죽어버린 셀을 생각하게 한 것이라는 서정적인 짐작은 가지만)은 봐주기에 낯간지러운 감이 있다. 자연으로의 회귀나 영겁으로 이어지는 윤회도 좋지만 몇 군데 쓸데없이 폼 잡은 표현들이 좀 있었다고 인정해두자. 그래도 끝내 난 이렇게 말할 작정이다. <데드 맨>을 보았던 242분(두 번 보았으므로)은 그 너절한 평문을 읽느라 보낸 30분의 고통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우선 내가 반한 건 화면과 음악과 배우들이었다. <법에 의한 전략>에 이어 로비 뮬러가 또다시 창조한 흑백 화면은 눈을 홀려버릴 듯 아름답고 닐 영이 기타 한 대로 시종일관한 음악 또한 그 단순한 리프의 반복을 통해 영혼을 마취한다. 뮬러의 화면은 개척기의 다큐멘터리 사진사 티모시 오설리반과 윌리엄 헨리 젝슨이 표현했던 가공 이전의 리얼리티와 소박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거기에 더해 시적인 아름다움까지 잡아내고 있다. 특히 숲 속 장면들에서는 싱싱한 나뭇잎이 뿜어내는 아로마가 맡아질 듯해, 삼림욕의 쾌감마저 느껴진다. 닐 영이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영화를 보아가며 즉흥적으로 연주, 녹음한 음악은 마일즈 데이비스가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서 이루었던 성과와 필적한다.....

     

     

    이런 이런, 짧게 갖다 쓴다는 것이... 인용을 멈출 수가 없다! 이렇게 영화를 즐거워하면서 해부하다니, 도대체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생들의 이름을 외워내는 것도 아니고, 전혀 생면부지의 작자들을 달달달 불러내어 자기 할 말을 해대는 이 건방지고 오만함이라니...       이러한 성격은 그의 영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듯한데, 소위 복수 삼부작(Vengeance Triology)은 세 편 모두 잔혹하기 짝이 없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모두 그러하거니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쓰리, 몬스터>가운데 한 편인 <컷>(이영화는 혹시 안 보신 분이 있으시면 앞으로도 보지 마시라.. 지나치게 잔혹해서 토할 수도 있다.) 등은 김기덕과는 또 다른 솔직하고 절제되지 않은 잔혹의 미학으로 관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던가. 이것이 이 냥반의 독특한 작품세계이다. 난 잔혹하다.. 그래 어쩔테냐...지금 생각해 보면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가 망치 하나 들고 십수 명의 상대와 싸우는 장면, 그 멀미 나는 롱 테이크...  그때 난 질렸었다. 뭐 저따위 감독이 있냐... 그랬었다.

     

    근데, 있다.  

     

      

     

     

     

     

     

     

     

     

     

     

     

     

     

     

     

     

     

     

     

    박찬욱의 오마주

     

     

     

    또 한 권의 박찬욱이다. 누가 B무비를 우습게 아는가? 박찬욱 감독이 매혹당한 영화들 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말 그대로 이 냥반의 오마주가 120여편 실려있다.     이 책의 발문 가운데 몇 구절을 보자면,

     

    .... 한 때 남의 영화에 관해 글을 써서 먹고살았다. 작품을 고를 권한이 주어지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가능한 경우에는 다음의 네 가지 원칙을 적용했다.

    첫째, 한국 영화는 건드리지 않는다. 둘째, 외화라도 극장 개봉을 즈음해서 발표되는 리뷰는 안 쓴다. 셋째, 욕하고 싶은 영화라면 차라리 아예 다루지 말자. 넷째, 한국에서 구해볼 수 없는 영화에 관해서는 쓰나 마나다....

     

    대단히 확고한 기준이다...라고 여겨지지만 대단히 비굴한 기준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 건드렸다가 자신도 졸라 깨질 우려가 있을 게고, 개봉 직전 리뷰 잘못 썼다가 배급사에게 작살 날 게고, 영화 잡고 욕했다간, 그래...니 작품도 두고 보자.. 이리 나올까 겁날 게고, 한국에서 못 보는 영화에 관한 글이야 써봤자 돈 안될게 확실할 테니... 어쨌거나 매우 확고하게 쫀쫀하기 짝이 없는 기준을 갖고 썼나 보다. 암튼,

     

    ..... 전에 책을 내자 제법 많은 이들이 와서 잘 읽었다고 인사들 했다. 그런데 난 참 알 수가 없는 것이, 왜 그 책은 그이들 수만큼도 안 팔렸냐는 점이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는 수다한 사람들이 또 와서 이런다. 사 읽고 싶은데 구할 길이 없다고. 당연하지. 절판되었으니. 하도 안 팔려서. 이제 이 개정증보판을 내놓고 한번 지켜보려고 한다. 얼마나 팔리나.

     

     

     

     

    참, 뻔뻔스럽다. 하지만 귀엽기도 하다. 박찬욱.

     

     

    (오마주...hommage. 영화감독이 다른 영화나 감독, 스타일에서 받은 영향을 자신의 영화 속에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 책은 <엑소시스터2> <화성침공> <석양의 무법자>는 물론 <시네마 천국> <비열한 거리> <로보캅> <지존무상> <하나비>등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120여 편이 넘는 온갖 장르의 영화들에 대한 이 냥반의 평론이 실려있다. 다행한 것은 평론이라지만 매우 짧다. 한 편의 영화당 기껏해야 두세 페이지이고 네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다. 더더욱 다행하게도 문체가 매우 미려하고 문학적이다. 그러나 덜 다행히도 글의 내용은 딱딱하다. 더더욱이 덜 다행하게 철학적 은유와 컬트적 자료를 지 맘대로 삽입한다.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나 나처럼 지진한 독자를 배려해 소프트하게 도닥거려주는 보충학습이 없다. 쉽게 말해 쉬운 하드웨어에 애러븐 소프트웨어다. 따라서 영화의 역사나 배우의 이름, 또는 영화 이론에 허약한 사람들에겐 전기공학 이론서라던지 부동산 관련 법규 서적과 다름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시칸 공돌돌의 유일한 특기가 무엇이뇨. 아무리 힘들어도 잘 참는다는 것! 꾹 참으며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이리 열심히 읽으면... 우 씨..그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진도가 매우 더디다.   

      

     

     

     

     

     

     

     

     

     

     

     

     

     

    예를 들까? 들자면 이런 것이다. <카사블랑카>에 대한 평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리고 유명한 공항 시퀀스. 이 할리우드 고전 명화의 이별 장면에서 놀라운 파격이 일어난다. 릭, 일자, 빅터 세 사람의 모습을 장면 화하면서 카메라가 릭을 중심으로 180도 상상선을 넘나드는 것이다. 그가 빅터에게 통행증을 건네줄 때 반대편으로 커팅되면서 파괴된 상상선은, 이어 일자가 릭에게 다가서며 "안녕"이라고 말할 때 카메라가 그녀를 따라 트랙 이동하면서 다시 연결된다. 단절과 화해의 의미를 변별하고 강조하는 이 오묘한 편집의 뉘앙스가, 마이클 커티스를 단순한 장인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여자에게 버림받고 이념을 버렸던 릭은, 결국 여자를 버리고 이념을 되찾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의 전망과 신념이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본래 어제를 '기억조차 못할 먼 옛날'이라 여기고, '세월이 흘러도 미래에는 관심이 없는', 그리고 고향인 뉴욕이 현재 몇 시인지도 알 수 없는 사람. 그의 과거는 사랑을 속삭이던 파리의 술집 이름 '아름다운 오로라'처럼 덧없는 것이고, 그의 미래는 마지막 뒷모습을 감싸는 밤안개처럼 전망부재의 것이다. 정착과 유랑, 이기주의와 사랑, 과거와 현재, 희망과 허무, 냉소와 감상의 대립항을 절묘한 멜로드라마적 해결로 감싸안는 정교한 내러티브 컨벤션, 이것이 '할리우드 실존주의'이다.    

     

     

     

    어라! 이리 베껴적으면서 읽으니 뜻이 쪼맨 통한다!! 놀라운 일이다... 그럼 이 책 전부를 다 베껴 적어 봐?

     

     

     

     

     

     

     

     

     

     

     

    낙지의 도서관에서 잠깐 읽다 두고 온 것이 자꾸 마음속의 돌부리처럼 발끝에 차이길래, 돌아온 즉시 인터넷으로 책을 구매했다. 사진으로 보드키 모음 ㅗ ㅏ ㅜ로 진행되는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하드 케이스에 나란히 넣어진 두 권이 형제이다. 물론 낱권으로도 살 수 있다.

     

    다 읽은 뒤 돌려 읽자고 예약한 이가 두 명이다. 이 책이 얼마나 팔리나 지켜보겠다는 박찬욱에게 가볍지 않은 유감의 념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