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緣1... (휴가 1 일)木...책과 사람 2009. 10. 16. 16:21
10월 둘째 주... 휴가였다.
휴가라 함은 모름지기 졸라 일한 후 고단함을 달래기 위함이겠지만
짜달시리 바쁠 것도 고단할 것도 없는 근간의 느슨한 현장의 공정이 무료했던 터
"그동안 열심히 땡땡이 치느라 헐거워진 관절의 나사 좀 조이고 오것쏘."
단호하게 선언한 후 뒤도 안돌아 보고 사무실을 나섰다.
나와는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한 때의 탱천하는 분기를 이기지 못해
서툰 문학한답시고 더불어 용천을 떨어대던 친구녀석이
1993년 볕 좋던 어느 가을 날 느닷없이 은행 떨어지드키 뚝! 소리내며 연락을 끊은 후
15년 이상 행방이 묘연해져
그 친구가 이승을 하직했나부다... 아님 남의 돈 떼먹고 외국으로 날랐을까...
남겨진 친구들이 무척 쓸쓸해 했었는데
정말 우연찮게 연락이 닿았고
현재 일산과 김포 일대를 배회하고 있노라는 통화까지 했었던 터라,
한달음에 서울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함께 전원문학회에서 선후배의 연을 맺고 노닐던 동지들이
홍대 근처 참치집에 자리를 잡았다.
언젠가 朴木月은 그의 시에서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이라고
고결한 언어로 有常한 緣의 無常함을 읊었거늘,
緣이라는 질긴 실에 꿰인 구슬들인 양 무릎끼리 부딪히며 앉아
세월이 무심히 밟고 지나 간 얼굴의 땟국물들을 서로서로 닦아 주었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묵시록...
나의 2년 후배로 전원문학회 12기인 이 젊은이에게서는
수심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초와도 같은 부드러움과 억셈이 함께 읽히운다.
곱창과 닭발을 입에 대지 못하는 천박한 식성을 갖고도
표푸이와 새벽 네시까지 쐬주를 대작하는데 주저함 없고
집채만한 사내들을 거칠게 몰아가며 탄탄하게 사업까지 꾸려가면서도
방송작가로서 하루를 이틀처럼 작업하고 있는
그야말로 도종환시인이 말한 부드러운 직선 같은 아가씨이다.
감꽃같은....
1년 후배로 전원문학회 11기이다.
무거운 나무탁자 위에 펼쳐진 책과 같은 향기를 가진
또는 이른 아침 찻집의 낮은 창을 넘어 퍼지는
갓구운 커피 향이 풍기는 사람이다.
품위가 있으나 무겁지않고
교양이 있으나 까탈스럽지 않으며
웃음이 많으나 천박하지 않으니
그녀의 심상은 마치 신문에 박힌 활자처럼 단호하지만 착하다.
기와솔님...
전원문학회와 전혀 상관없으나 표푸이의 출현에 기꺼이 업저버로 참석하셨다.
제대로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억센 부산 사투리가
유월 장마비처럼 술상위를 두드리며 소란을 떨어도
어느 한 부분에도 고독함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끝까지 절제와 인내의 미를 보이셨다.
단지 노래방에서 부르신 노래에서 잠깐 날카로운 애수가 느껴졌었다.
톳나물...
나와는 중학교 동창이자 전원문학회의 동기이다.
내 블로그에 워낙 자주 출연하니 새삼스레 이야기할 꺼리가 없지만
말하자면, 간혹 뜬금없이 내 엄지발가락이 아프고 결리는 날엔
이 친구가 제 발에 맞지않은 신발을 신고 있음이 틀림없다.
넓고 다감한 가슴에 섬세한 난(蘭)이 숲처럼 우거져 있는 사내이다.
이 친구...
실종되었다 어느 날 성큼 나타난 문제의 그 남자다.
나와는 고등학교 동기이자 전원문학회의 동기이다.
형제보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의 연을 냉면 가락 자르드키 싹뚝 자르고
십육년을 사업에만 몰두했다니
내가 사람 잘못봐도 한참 잘못 봤다.
만나는 즉시 패 죽이고 가목사리나 할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중요한 사업관계로 VIP와 함께 다음 날 오후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반드시, 꼭, 필히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보다는 좀 더 후환이 작은 복수로 가닥을 잡았다.
제 몸무게만큼 술을 퍼먹여 택시에 구겨 넣어 집으로 보냈으니
다음 날 출장은 아나공갈 염소똥이 됐을게다.
싣고 간 택시기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와서
.... 이 손님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는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울부짖는 하소연을 들으며
그동안 끊임없이 풍치에 걷어 차이던 어금니가
새싹처럼 파릇파릇 다시 돋아나는 상쾌함에 행복해졌다.
200억 공사 수주건이라 그랬던가?
아주, 쪼맨 미안한 마음에 사진은 두 장 올려준다.
참치집을 나와서 이차로 들렀던 와인바.
이곳에서 다시 노래방으로 옮겨 마지막 뒷풀이를 했다.
묵시로기 끝까지 뒤치닥거리 하느라 욕봤고,
감꽃처럼과는 몇년 밀린 이야기 다 못했구나.
기와솔님 다음날 근무에 지장 없으셨는지 안부 여쭙고,
톳나무리는 다음 날 계속 이어진 강행군에 뒷머리 땡기리라.
자신의 사진이 떠억하니 실렸다고 항의일랑 하지마시라.
초상권... 시비하시려면 내 변호사를 통해 따지시고,
끝까지 하비가 안될 경우 사진을 빼는 대신
그 날 있었던 온갖 비행들을 낱낱이 공개해 버릴테니....
다음 날 있었던 강남 모임은 후속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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