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5 (終)
ACCOMODATION ERECTIONⓒ飄風
눈앞에 놓인 거대한 배를 본
박통은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이건.. 배가 아니야!"
그건 한 마디로 괴물이었다.
지금이야 4,50층이 넘는 고층빌딩도 많고, 하다 못해 송전탑도 몇 십미터 높이는 예사로 보는 시대이지만, 당시는 고층아파트래야 고작
5층남짓이고, 전봇대도 앙징스러운 시대였다.
그의 눈앞을 가로막고 선 그 쇳덩이는 얼추 보아도 10층 높이에 300미터를 넘는 길이를
가진 몸통을 하고 있는데다 그 몸통위에 다시 7층짜리 건물같은 거주공간을 얹고 있으니 이건 지나치게 커 버린 공룡이었다.
이게 물에 뜬다고?
박통은
겁이 덜컥 났다. 이것들이 배를 만들라니깐 섬을 하나 만들었잖어!
"이걸 띄운다고? 날 뭘로 보고 뻥을 치는거여.."라고 말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었지만 박통은 얼굴근육이 자꾸 씰룩대는 건 어쩌지 못했다.
식전행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박통의 안색을 살피고 있던 측근이 물었다.
"각하!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음, 아,
아냐.."
"아닙니다. 안색이 매우 어두우십니다. 왜
그러십니까?"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박통이 아주 수줍은 미소를 잠깐 짓더니 정말로 수줍게 살짝 말했다.
"음, 임자.. 저기 있는 사람이 덴마크 선박고문이라 그랬나?"
"네, 각하"
"저 사람에게 이 배가 진짜 뜰 수
있는지 한 번 물어 봐 주겠나? 내 생각엔 전혀 뜨지 못할 것 같어."
"그러겠습니다, 각하."
측근이 덴마크 고문에게 살짝 다가가서 물었다.
"이 배가 정말 물에 뜰 것인지
각하께서 물으십니다. 숨김없이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덴마크 고문은 잠시 뭔가 생각을 하더니 그 측근의 귀에다 대고 나지막히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조선 전문용어가 많이 섞인
영어로...
"철은 물보다 비중이 커지만 배의 발라스트탱크와 카고탱크내부는 비어있으므로 물에
잠기는 부피에 해당하는 물의 무게만큼 부력을 받지요. 그 부력이 배의 하중보다 클 때 배는 부양합니다. 단지 배를 균형있게 띄우지 않거나
지나치게 띄우면 경사(頃斜)위험이 있기 때문에 스태빌리티를 맞출만큼 일부탱크에 발라스팅을 하지요. 그러면 배의 약 3~40%는
물에 잠기고 나머지 6~70%는 물에 뜨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말씀 드려 주십시오."
"......"
이게 도대체 뭐 소리여..
측근은 당최 무슨 소릴 하는 건지 헛갈리기 짝이 없었다.
영어만 해도 귀가 앵앵거릴 판에 무슨 귀신이
씨나락 훑는 것 같은 뱃넘들 야그까지..
그렇지만 엄숙한 행사장에서 계속 찍자붙어 징징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짧고도
허술한 영어 실력으로 더 물어 봤자 알아 먹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다행히 마지막 말은 확실히 알아 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태, 탱큐..(매렁!)"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가볍게 들어 반쯤
거수경례같은 인사를 하고는 허리를 낮게 구부린 채 박통곁으로 돌아 온 측근은 마치 적의 동태를 완전히 파악하고 돌아온 척후병같은 표정으로 박통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각하, 물에 잠길 확률이 3,40%이고, 물에 뜰 확률이
6,70%랩니다. 다행히 물에 뜰 확률이 두 배쯤 됩니다. 안심하십시오."
박통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다행이구만. 어쨌던 함 지켜
보자구.."
대꾸는 그리 했지만 박통의 얼굴은 점점 침울해져 갔다.
행사가 끝나고 드디어 독크에 물이
들어 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거대한 배는 잠시 기지개를 켜는 듯 하더니 서서히 떠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폭죽처럼 터졌고, 박통은 6,70%의 확률이 성공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망연자실 서 있다가 이내 불에 댄 것처럼 박수를 쳐대기
시작했다.
"오, 오, 오...."
뭐라 큰
소리로 이 감격을 외치고 싶은데, 터져 나오는 것은 탄식밖에 없었다.
염치없게도 눈물이 찔끔 나와서 슬쩍 고개를 돌리니 의자에 앉은 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이는 정주영의 넓은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거인도 항문에 병이 깊으면 운다....